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정남·강연정 부부간첩 사건 (문단 편집) === 실수 === 이들이 간첩으로 3달 가까이 활보했지만 특별한 신고는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남한 관련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모양인지 어설픈 실수를 많이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1997/11/27/1997112770387.html|#]] 그 실수 몇 가지를 보자면... * 버스 잔돈 꺼내는 법을 모름: 둘은 8월 3일 경상남도 거제도에서 마금산 온천행 버스에 올라 1천원을 내고 요금 960원을 제외한 잔돈 40원을 받으려고 한동안 서 있었다. 그러나 다른 승객들이 운전사 옆의 잔돈 통에서 돈을 꺼내 가는 것을 보고 순간 당황했고 운전사가 계속 주시하는 것 같아 불안에 떨었다고 진술했다. * [[생리대]]와 아기 [[기저귀]]를 구분하지 못함: 강연정은 마금산 온천 앞 슈퍼에서 아기 기저귀를 생리대로 잘못 알고 구입하는 등 2차례나 아기 기저귀를 샀다고 한다. * 메밀국수 먹는 법을 모름: 10월 22일 즈음 [[여의도]] 빌딩 지하 식당에서 판으로 된 [[메밀국수]]를 주문하고는 면을 간장 소스에 적셔 먹는 방법을 몰라 간장 소스를 메밀국수 위에 붓는 바람에 소스가 국수판 밑으로 흘러 바지를 다 적시기도 했다. 단 이걸 가지고 간첩이라고 의심받기에는 모호한 점이 있다. 메밀국수를 처음 먹는 한국인들도 위와 같은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를 거친 노년층은 대부분 메밀소바가 무슨 음식인지 알고 있었고 서울 시내에는 수십년을 이어져 온 메밀국수집도 남대문 등 여러 곳에 있는 데다 심지어 한국식으로 정착해[* 일본인의 입맛으로는 상당히 국물이 달짝지근해졌다.] 변형되었을 정도로 메밀국수는 친숙한 음식임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최/강씨 부부는 60년대생으로 일제강점기를 살아 봐서 일본식 음식에 익숙할 법한 노년층이 아니었던 데다 일본식 메밀소바가 일제강점기에 이미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매식문화가 대중적이지 않았던 당시 일본식 요리점은 남대문, 종로 등 대도시 번화가 또는 일본인 거주지역에나 있었으니 시골 출신이라면 익숙하지 않아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더불어 다양한 종류의 외식문화가 대중화된 21세기에 비해 90년대에는 외국 요리 등 특이한 요리는 정말 뭔지 몰라서 어떻게 먹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 즉 당시 기준으로는 평범한 한국인이라도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일본식 소바를 어떻게 먹는지 몰라 쩔쩔매다가 판에 츠유를 붓는 일이 있을 법했다는 것. 소바가 상당히 대중적인 외식 메뉴로 자리잡은 21세기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여하간 북한에서는 상당한 특권계급 출신인 남파공작원인데도 메밀국수 먹는 방법을 전혀 몰랐다는 것을 볼 때 북한에서 일본식 소바는 그리 흔히 먹는 음식은 아니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북한에 있는 일본 식당에서 소바를 취급하는 경우도 있고 백화점이나 고급 식자재점에서 소바 재료를 파는 경우는 있다고 하지만 냉면이 더 익숙한 요리다 보니 메밀국수는 주로 [[재일교포]] 출신 귀환자들이 먹는다고 한다. * 대한민국 말투 사용 미숙: 대한민국 출신 교관에게 교육받기는 했으나 대한민국 말투에 자신이 없어 식당에 가서도 대화하지 않고 서로 멀뚱멀뚱 쳐다본 적이 많았다. 1997년 8월 중순에는 최정남이 식당 아줌마에게 말을 걸었다가 "젊은 사람이 말투가 이상하다"는 면박을 받았고 강연정이 급히 남편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질책했다. 물론 "연변에서 왔다"거나 "탈북했다"라고 퉁칠 수 있었겠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